열아홉인데요, 4년차 개발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들어가는 글
나는 2004년 6월생이고, 첫 회사에 입사한 게 2021년 10월 쯤이니 이 글은 제목 어그로가 아니다. (물론 만 나이로 적은 의도성은 양해를 구한다.) 4년차 개발자라는 말이 어색하고 부담스럽지만, 걸맞는 사람이 되려면 나를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023년에는 퇴사 같은 빅 이벤트도 존재하였기에, 기록하고 싶었다. 노트북을 펴고, 2023년 회고를 적어본다.
일
컨퍼런스 준비
2023년 초에는 해외 컨퍼런스에서 제품을 임팩트 있게 소개하기 위한 몇 가지 굵직한 기능들을 개발했다. NFT 마켓플레이스, 소유한 NFT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저 프로필 기능을 모바일에 추가하였으며, PC 유저의 온보딩 프로세스를 구현하였다. 온보딩 프로세스 개발이 특히 즐거웠는데, 혼자 맡게 된 터라 기획/디자인 단에 의견을 많이 반영할 수 있었고 Canvas, CSS의 translate3d 등을 활용해 인터렉티브한 UI(닉네임을 한 글자씩 입력할 때마다 관성을 가지는 공이 추가된다던지, 카드 버튼에 3d 호버 효과를 준다던지…)를 만들어볼 수 있었다. 기능 복잡도에 비해 예상 일정이 촉박해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었고 남은 기간 동안 코드 개선 작업과 함께 팀원 분들의 업무를 도왔다.
해외 컨퍼런스 이후의 스텝은 NFT 관련 국내 컨퍼런스였다. 해당 컨퍼런스의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을 우리 제품에서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라이브 스트리밍 생성 프로세스를 맡아 개발했다. 특성상 스트리밍 시작까지의 상태 데이터가 복잡한 감이 있었지만, 명확하고 쉽게 표현하기 위해 워딩과 버튼 색 등의 UI를 디테일하게 고려했다. 컨퍼런스 당일에는 에러 대응을 위해 팀원 전체가 스트리밍 장소에서 대기했지만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DM 기능 개발
제품의 커뮤니티성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DM 기능을 추가하였다. 모바일, PC 동시 대응, 실시간성 등의 이유로 볼륨이 큰 작업이었기에, 전반적인 레이아웃부터 우선순위 설정까지 기획에 많은 리소스를 소요하였다. 기획 이후 디자인 리소스가 부족한 상황까지 겹쳐, 최소한의 디자인 리소스로 기능 위주의 개발을 진행하였다. 개발 과정에서 추상화 레벨의 부재로 유사한 기능이 여러 코드로 분산된 것을 개선하는 작업을 동시 진행하였는데, 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숙원 사업이라 해결한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커뮤니티
엑셀콘
두 번째 개최였던, 술과 음식이 함께하는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작년에 미성년자여서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운 좋게 당첨되어 다녀올 수 있었다. 기업 컨퍼런스만큼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음식과 명랑한 분위기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만 장소 측 사정으로 인해 내가 다녀왔던 회차가 마지막 엑셀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프콘
작년에 당첨되지 않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당첨되지 못해 인프런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세션을 시청했다. 김영한 님의 ‘어느 날 고민 많은 주니어 개발자가 찾아왔다 2탄: 주니어 시절 성장과 고민들’ 세션과 진유림 님의 ‘팀플레이어 101: 팀의 성공을 위해 달리는 메이커 되기’ 세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김영한 님의 세션은 주니어 개발자로서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있었던 터라 인상깊었고, 유튜브에서 김영한 님의 타 컨퍼런스 세션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글또
글 쓰는 개발자 모임인 글또에 9기로 합류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영향력을 주고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확히 부합하는 커뮤니티였다. 단순히 2주에 한 번 글을 작성하고, 작성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는 프로세스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개개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의지만 있으면 커피챗, 스터디, 발표 등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많았다. 모두의 성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는 커뮤니티인 것이 단시간 참여해도 보일 정도였다. 남은 활동 기간 동안 나도 열정적으로 참여해보려고 한다.
생활
운동
사내 운동 동아리에 가입해 개인적 숙원사업인 운동을 시작했다. 2주에 한 번 정도 자유롭게 모여 다양한 운동을 체험해보는 방식이었는데, 클라이밍, 러닝 등의 노말한 운동도 시도해보는 한편 내 인생에 전혀 없을 것 같았던 스피닝, 크로스핏 등의 운동도 체험해보았다. 다음 날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고통을 함께 겪고(?) 친밀해진 회사 동료들과 새로운 도전의 성취감이 좋았다.
건강
원래도 허약했지만 조금 더 허약해진 2023년이었다. 스트레스와 야근, 음주를 원인으로 다양한 질병이 찾아왔다. 독감, 장염, 위염, 기립성 저혈압, 불면증까지 질병 종합 선물세트였다. 위장염은 양배추환을 먹게 된 이후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저혈압으로 인해 머리가 띵하고 수면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한숨도 자지 못할 정도로 예민하다.
투자
부모님께서 주식 투자를 선호하시지 않는 편이셔서 나 또한 주식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등락하는 자산을 보며 시간을 사용하는 것보다 확정적으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예적금을 좋아했다. 2023년에는 청년도약계좌와 제작년 개설한 주택청약계좌에 꾸준히 돈을 넣었다. 2회째 진행했던 토스 키워봐요 적금이 만기되어, 이번에는 어떻게 돈을 분배할까 고민했다. 1회째엔 예금으로 전환했었지만 이번에는 절반 정도는 다시 적금에 넣고, 절반은 첫 주식 투자를 해보기로 했다. 잃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당연히 마음은 아픈 금액으로 결정해 투자했고, 현재까지는 나쁘지 않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경제 공부용 장기 투자로 시작해서 그런지 딱히 등락률이 신경쓰이지 않아서 좋은 것 같다.
공부
글또 커뮤니티 내에서 React Three Fiber 스터디, JavaScript 디자인패턴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평소 궁금했지만 업무에서 직접적으로 쓸 일이 많진 않았던 기술들이라 취미처럼 공부하고 있다. 그 외 개인 활동으로는 만들고 싶었던 것들 만들어보기, 위키 문서 작성하기, 이력서 업데이트하기, 블로그 이전(prev, next), 친구들과 사이드 프로젝트 진행 등 이것저것 했다.
멘탈
속도의 부작용
고등학생 때 꿈꿨던 ‘강남 초역세권 오피스텔에 사는 커리어 우먼’이 되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불행하고 불안했다. 심한 장염으로 일주일 간 재택근무를 했을 때, 언젠가 더 건강이 악화되면 내가 쥐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몰아치는 일정과 배포 이후의 공허가 반복되었으며, 가파른 성장에 한눈 팔려 기반이 되는 지식과 체력을 기르지 못한 내가 싫었다. 평생 빠른 것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무너지고 있었다.
퇴사할 결심
약해진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만들고, 기반 지식을 다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 생활과 병행해보려 했지만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었다. 고민이 계속되자 여기저기 조언을 구해보았지만 명확한 답은 없었다. 결국 나는 미래의 나에게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10년 후의 나는 분명히 이 순간을 회고할 텐데,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내가 어떤 선택을 하길 바랄까?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행복한 게 우선이라고 얘기할 것 같았다. 이후 퇴사를 결정했고, 현재는 커피챗, 스터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2024년에는
퇴사 이후, 한 달 정도는 계획 없이 살아보고 싶어서 하고 싶었던 공부들을 마구 하기도 하고, 때론 죽은 듯 집에서 쉬기도 했다. 계획 없는 삶을 잠시 즐겼으니 신년부터는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할 예정이다. 자신감을 앗아갔던 무지와 흔들리는 멘탈, 허약한 신체를 개선해 3월이 되기 전까지는 서류를 내볼까 한다. 앞으로 걷게 될 길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을 기억하며 나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