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vana
한때 타인에 닿고 싶었다. '긍정적인 영향력'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분명 그것을 추구하고자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정작 나는 삶을 불평하고, 불의를 보며 분노하지만 결코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 염세적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타인과 닿는 것이 결코 달갑지만은 않게 되었다. 내가 꿈꿔왔던 무언가가 그저 허상처럼 느껴졌다. 타인과의 관계가 두렵고, 무섭고, 싫으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 싶다니. 바보같은 말 아닌가. 사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영향력 따위가 아닌 것이 아닐까.
삶에서 반사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원했던 것들을 적어보았다.
- 더 좋은 직장에서 더 좋은 동료들과 일하기
-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기
-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 안정적인 돈 벌이 수단
- 결단력 있는 사람 되기
- 마음의 여유 갖기
이제 내밀한 마음 속을 들여다볼 시간이다. 정말 나는 이것들을 원하는가?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일까?
- 더 좋은 직장에서 더 좋은 동료들과 일하기
'더 좋은 것'은 여름철의 우유처럼 상하기 마련이다. '더 좋은 것'을 얻더라도 인간은, 적어도 나는 '더 더 좋은 것'을 원한다. 이상향에 가까워진다 하더라도 그 이상향이 금세 바뀌어버리곤 한다. 정도껏 달성하면 되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정도껏 만족할 자신이 없다. 욕심이 거부한다.
-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기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가? 굳이 이런 철학적인 질문으로 따지지 않아도 이 목표는 쉽다. '대단히' 특별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친구, 가족, 연인, 그 외의 모든 것으로 우리는 특별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나에게 있어 특별하다. 그것을 뛰어넘을 특별함은 존재할 수 없다.
-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 안정적인 돈 벌이 수단
영위하고픈 생활 수준에 맞게 벌면 문제없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못 벌면, 생활 수준을 낮추면 그만이다. 낮추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벌면 된다. 물론 생활 수준을 낮추고 싶지도 않고 미래에 저당 잡힌 채 초-저축 생활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 정도 욕심이면 충분한 것 같다.
- 결단력 있는 사람 되기
- 마음의 여유 갖기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겠지만, 나는 결단력과 여유를 갖춘 사람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나는 현명함이 결여되어 있다. 앞에 놓인 도전들을 관성적으로 회피하고, 다리를 떨고 손톱을 깨물며 덮치는 일들을 쳐낸다. 겨우겨우.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줄줄이 읊었던 바램들은 다시 생각해보니 별 것 아닌 것 같다. 지적 허영심이 넘치고 타인을 미워하는 나에게 정말이지 필요한 인간의 모습은, 현명함이다. 머리가 조금 개운해진 느낌이 든다.
현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그것은 아득바득 원한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경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방향과 한계에 매이지 않고 꾸준히 움직이며 경험하는 삶을 살면 되지 않을까 상상할 뿐이다. 타인을 떼어내고 정신적 자유를 통달한다. 열반의 경지에 올라야만 할 것 같다.
(현명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평생 되지 못한 것을 떠올리기란 어렵다. 목표라 불리웠던 많은 비겁함을 떼어낸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뭐가 되었든 하나에 집중하면 된다.